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롱딴 전투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호주군 D중대는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로 진지나 참호도 없이 압도적인 베트콩의 공세에 맞서 수 시간이나 버텨냈다. 이는 베트남 전쟁 참전 호주군의 교전 기록 중 가장 대표적인 전투로 자리 잡고 있다. 오늘날까지도 당시 참전 용사들은 정기적으로 롱딴 전투 기념식을 치르고 있다.[* 이 기념식은 호주군 참전 용사 외에도 당시 참전했던 베트콩 측 참전 용사까지 초청하곤 했다.][* 그런데 롱딴 전투 50주년 기념이던 2016년에 참전 용사들이 기념식을 대규모로 치르기로 한 것을 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160817169300093|베트남 정부에서 태클을 건 적이 있다.]] 아무래도 자신들이 패배한 전투를 가지고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게 맘에 안 들었던 모양.] 간혹 화력 지원 있는 대로 다 퍼부었으니 당연히 방어 성공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의견도 있다. 물론 화력 지원과 장갑차의 증원이 없었다면 호주군은 분명히 전멸했을 것이나 애초에 박격포 전력을 잔뜩 갖춘 7~25배나 되는 적을 상대로 100명 남짓한 보병 중대가 제대로 된 진지나 참호도 없이 화력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텨낸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.[* D중대가 증원군 도착 직전까지 입은 손실을 보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전멸 판정이 떨어질 정도의 손실이었다.] 당시 호주군의 기록에 의하면 베트콩이 녹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. 전투 내내 베트콩이 민병대답지 않게 포격/폭격 및 적 장갑차 등장 후에도 전의를 상실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근성을 보였던 것도 그렇고 이 전투의 북베트남 측 병력이 명목만 베트콩이고 실제로는 [[북베트남군|북베트남 정규군]]이었을 가능성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